1. 일본 증시 역사상 최고치

최근 일본 증시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반면 한국 증시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죠. 도대체 무엇이 일본과 한국을 갈랐을까요? 일본 역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을 받았고 불만도 많았지만 주식 시장만큼은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일본 증시가 고점을 기록한 배경에는 단순한 정책 발표나 외부 변수에 대한 반사효과보다는 탄탄한 실적 기반과 구조적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


2. 주가와 실적은 '쌍둥이'

일본 증시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기업 실적을 봐야 합니다. 일본 상장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주가와 거의 같은 흐름을 보입니다. 2023~2024년 실적은 견조했으며, 특히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개선됐습니다. 이전에는 기업의 매출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얼마를 팔았느냐'보다는 '얼마나 남겼느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니는 과거 주력 사업이었던 가전 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고 이미지 센서·엔터테인먼트·우주사업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기업의 체력을 끌어올린 것이죠.


3. 영업이익률과 기업 구조조정의 힘

일본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체질 개선을 지속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 적자에 허덕이던 소니는 이미지 센서와 콘텐츠 분야에 집중하며 영업이익률 10%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조업에서 이 정도의 수익성을 지속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또, 후지필름은 필름 대신 제약·화장품 분야로 확장했고, 아지노모토는 반도체 소재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본업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처럼 “적자를 내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기술 기반의 고수익 사업으로 전환한다”는 전략이 일본 기업 전반에 퍼졌습니다.


4.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린 이유

일본 증시를 끌어올린 또 다른 축은 외국인 자금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보유 비중은 2024년 기준 사상 최고치인 32.4%를 기록했습니다. 2020년 이후 꾸준히 비중이 올라왔으며, 코로나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 속에서 일본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안 시장'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엔저 현상도 이들에겐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같은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은 매입 매력도를 높였고, 탄탄한 기업 실적과 거버넌스 개혁이 맞물려 외국인 자금을 유입시켰습니다.


5. 일본식 '밸류업', 한국과 무엇이 달랐는가

최근 한국에서도 ‘밸류업’ 논의가 활발하지만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주주가치를 높이는 제도를 구축해 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2015년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해 기업과 기관투자가의 책임과 투명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 코드는 강제력은 없지만 ‘지키지 않으려면 설명하라’는 원칙을 적용해 사실상 기업과 기관들이 따를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3년부터는 도쿄증권거래소가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요구하며 PBR 1 미만 기업들에게 개선 계획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6. 제도보다 더 중요한 '축적된 신뢰'

이러한 제도들이 당장 주가를 끌어올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2013년 이후 기업 실적과 함께 서서히 주가도 우상향해 왔습니다. 제도는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는 장치이고 기업의 체질 개선과 맞물릴 때 주가 상승의 기반이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큰 반응이 없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체력을 끌어올립니다. 한국이 일본의 밸류업을 벤치마킹하려면 단기 효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지속적이고 투명한 제도 개선과 실적 개선이라는 ‘두 개의 축’을 함께 다져야 할 시점입니다.


7. 일본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입니다. 과거에는 CEO가 이사회를 장악하거나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최근엔 독립 이사를 늘리고 외부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히타치는 현재 이사회 12명 중 9명이 외부 독립 이사이며 이 중 5명은 외국인입니다. 도요타나 소니도 비슷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사회가 형식적인 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CEO를 견제하고 전략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8. 개인 투자자 증가와 장기 투자 기반

일본은 개인 투자자 확대를 위한 정책도 지속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니사(NISA)' 제도입니다. 개인 투자자가 연간 일정 금액까지 비과세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해 투자 장벽을 낮췄습니다. 일본 인구는 줄고 있지만 주주 수는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으며,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는 주식시장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9. 한국에 시사하는 점

한국은 지금 밸류업과 관련한 제도 논의가 한창입니다. 하지만 일본처럼 장기적으로 제도와 기업 문화가 동시에 변화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보여주기식 대책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조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전문가 회의, 공청회,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제도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신뢰를 줄 수 있는 방법입니다.


10. 실력 + 제도 + 신뢰의 삼박자

일본 증시의 성공은 우연이 아닙니다. 실적 개선,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혁, 외국인 유치 전략, 개인투자자 확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오랜 시간 누적되며 현재의 고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간다고 해서 몇 개월 만에 주가가 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방향성을 일본처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면, 국내 증시도 충분히 체질 개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기간의 반짝 실적보다도 신뢰를 주는 제도와 꾸준한 구조적 개선입니다. 투자자들도 이에 대한 인식을 함께 바꿔나가야 할 때입니다.